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독 / 장만호

폴래폴래 2009. 3. 20. 08:17

 

 

 

                                                        사진출처:네이버포토 

 

 

 

 

 

                       독            / 장만호

 

 

 

 금 간 독 속으로 저녁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누군가 밤새 길어다 부은 물이

 긴 여름 장맛비가

 장맛처럼 짜디짠 한 여자의 일생이

 저 속으로 들어갔다 빠져 나왔을 것이다, 나는

 속을 모르고

 나는 어떤 저녁인가

 어떤 빛으로 물들어가는 어둠인가

 내 안의 부재를 들여다보는 일은 많은데

 

 오랫동안 부글거렸거나 얼고 녹았을 내장(內藏)의 시간들이 서서히 빠져나간 후

 수면 내시경을 받고서는 주름진 내장(內藏)의 굴곡을 다른 꿈속인 듯 바라보는 늙은 어머니처럼

 그걸 지켜보며 슬퍼서 슬퍼서 심장이 된* 어느 아들처럼

 

 독은, 가만히

 가로수에 머리를 대고

 제 안의 늦은 저녁을 사유하고 있다

 

 누군가 몰래,

 내가 품은 저녁을

 내 부재의 실금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정지용의 '파충류동물'. "나는 나는 슬퍼서 슬퍼서/심장이 되구요"

 

 

 

 

 

 

             -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무서운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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