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사과나무정육점 / 이민하

폴래폴래 2009. 1. 30. 20:35

 

 

 

 

 

 

 

      사과나무정육점        / 이민하 

 

 

 손에 손을 포개고 얼굴에 얼굴을 묻고 그는 빈집이 되었네. 여름은 선탠하러가서 물에 빠지고 가을은 헐거워진 안경테를 수리 중이고 잠꼬대를 개고 일어난 겨울이 산책 코스에서 만난 그는 팔다리가 거미줄 같았네. 겨울이 창고에서 황사바람을 꺼내 와 염포처럼 덮치는 순간, 손에 손을 펼치고 얼굴에서 얼굴을 꺼내며 그는 향수(鄕愁)를 사방에 터뜨렸네. 겨울이 가을을 불러오고 가을이 여름을 건져 심장 마사지를 하였네. 천지가 둘러앉아 감탄하였네. 겨울이 보석함에서 향수병(鄕愁病)을 꺼내 와 새로운 라벨을 붙이는 순간, 여름은 미니어처를 들고 향수공장에 가고 가을은 블로터 스트립을 흔들며 실험실로 가고 겨울도 잠옷 자락을 하얗게 휘날리며 사라졌네. 빨갛게 곪아 팔다리를 뒤틀던 그는 망치를 치켜들고 정수리를 내리쳤네. 지진이 나듯 살이 뚝뚝 떨어지자 천지를 식탁에 불러 앉혔네. 도축되지 못한 사과들은 빈집에 매장되었네.

 

 

 

            -2000년 '현대시'등단.

             시집<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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